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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이레(창세기 22장)

김영식 목사의 주일 설교 말씀

by 샤방샤론 2023. 4. 21. 01:40

본문


창세기22: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본문은 아브라함의 삶에서 가장 유명한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갈과 아스마엘을 쫓아낸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려가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3일 간의 여정을 떠납니다. 3일의 시간이 지나 앞을 보니 하나님께서 명하신 산이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와 함께 따라온 종들을 그곳에 내버려두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마지막 길을 오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산을 올라가는 중에 이삭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간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준비하셨는데, 정작 짐승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중에 아버지께 제물로 드릴 짐승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씀이 제물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올라가자 하셨습니다. 그 말만 믿고 제사할 곳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도착하니까 갑자기 아버지가 변하셨습니다. 짐승대신 자신을 포박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칼을 뽑아듭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막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십니다. 축복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제사를 모두 마치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중에 그의 형제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이 사건은 아브라함과 관련된 창세기의 이야기들 중 최고의 절정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드디어 인정받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인정받는 과정이 너무나 처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 과정의 시간을 이겨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물론 믿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 길이 평탄하지는 않습니다.

마태복음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사도 마태도 고백하기를 생명으로 가는 길이 좁고 협착하다 합니다. 그럼에도 그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그것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시간 믿음의 그래서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 받아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을 소유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이 말씀을 나눕니다.


1. 하나님의 시험을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시험의 내용과 받을 장소를 알려주십니다. 이 시험이 아브라함에게는 무엇보다 잔인한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으로 얼마 전까지,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이스마엘을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쫓아 낸 것만으로도 밤을 세워 근심하였는데, 이번에는 그의 하나 남은 아들이자, 후계자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니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심정을 모르시지 않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을 가지고 시험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잃으면 고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배우자를 잃으면 홀아비나, 과부로 부릅니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를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굳이 찾는다면 중국 고서에서 사용된 ‘독부’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독부는 자녀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에 자녀를 잃은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말로써 웬만한 것을 모두 표현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갖는 자녀의 의미는 감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잔인한 시험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모습이 예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예전이었으면 소돔의 의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처럼,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창19:23-32) 아니면 이스마엘을 쫓아낼 때 밤새 근심하였던 것처럼 근심했을 것입니다.(21:11)

그런데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이러한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른 아침부터 준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러주신 곳으로 여정을 떠납니다. 자녀를 죽이러 가는 여정임에도 그의 발걸음에 거침이 없습니다. 왜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앙의 고백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 너희는 여기에서 기다려라. 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함께 돌아올 것이다. 라고 명령합니다. 자식을 죽이러가면서 종들에게 하는 말이 함께 돌아올 것이다. 라고 명령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종들을 떨어뜨려야 손쉽게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들을 안심시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제물이 없는 것에 의아하게 여긴 이삭의 질문에 다시 대답하는 그의 고백을 보면(8)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시험하실까요?

출애굽기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신명기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아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지키고자 하는지를 보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자신의 온전한 믿음을 더 단련하고자 하나님께 시험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시편26:1-2

1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아브라함도 시험을 마치고 하나님께 받은 평가가 그것입니다.

창세기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성경에서 시험하다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시험하는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알아보시다’, 또는 ‘입증하다’라는 하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실 때에는, 확인하시고자 하시기에 능히 견뎌낼 수 있을 만큼만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위기로 몰아넣으시려는 악한 의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단련하시고,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알기를 원하시기 내리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주님의 시험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시험을 통하여 주님을 더 깊이 아는 시간이 되시고, 그 은혜를 통하여 주님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시험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고백인 ‘여호와이레’입니다. 이 고백에 시험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여호와이레’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이 고백은 앞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이삭이 제물이 어디에 있느냐? 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8절)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리라(8절)” 이 답변이 희망의 표현이든, 기도이든, 예언이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것을 믿고 증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시험을 하시는 동안,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기에 자식을 죽이러 가는 길임에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의심과 의혹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예배의 마지막 현장에 여호와이레를 외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의 많은 세대들이 그곳에 주님을 경배할 것을 예언합니다.

창세기22:14(아람어 성경 - 탈쿰 앙겔로스 버전)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경배하고 기도하며 말했다. 이곳에서 많은 세대들이 주 앞에 경배할 것이다. 이 날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주 앞에 경배하였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하여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고백하는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고, 경배하는 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준비하실까요? ‘여호와이레’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답이 나옵니다. ‘여호와이레- 여호와께서 보실 것이다. or 여호와께서 택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여정을 다 를 지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역대하 16:9 상반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하나님은 악인이든지 선인이든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이 땅을 두루 살펴보십니다. 살펴보시면서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시험이 끝나고, 눈을 들어 보니 그제서야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숫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 있던 숫양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이삭을 대신해 드리며 예배를 마칩니다.

시편121:1-2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뵈올 때, 비로소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준비하신 은혜를 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17-18)

75세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많은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적을 잃을 뻔했고(롯), 아내를 잃을 뻔했습니다. 심지어 자식마저 잃을 뻔했습니다. 그 모든 역경의 삶을 살았던 아브라함이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고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지키셨고,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평안히 그의 삶의 터전 브엘세바로 돌아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멈춘 것이 아니라 그의 사촌 나홀을 통하여 이삭의 앞 길까지 준비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시험을 마친 성도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신앙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시험하자로 나타나시지만, 마지막에서는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분으로 바뀌십니다. 어찌보면 모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이 기이한 모순에 기꺼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는 잘못된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 믿음에 예 하시면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하여 준비하신 주님의 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를 향해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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