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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창세기23장 6절)

김영식 목사의 주일 설교 말씀

by 샤방샤론 2023. 4. 19. 17:47

본문

성도의 삶


창세기 23: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아브라함 이야기는 이제 막바지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창12장에서 22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믿고(12:1-14) 따라갑니다. 그리고 상속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급박한 모험(22”1-14)을 무탈하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에게 남은 과제는 두 가지입니다. 아내 사라를 매장하는 일과 이삭의 신붓감을 찾아 주는 일입니다. 이번 장에서 아브라함은 그중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합니다.

본문의 말씀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본문은 아주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라의 죽음과 장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나 성취가 일절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본문의 말씀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다음세대에 신앙을 전해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6:6-9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잠언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마태복음28: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져 가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이냐? 아브라함의 이야기기의 핵심인 창12:1-3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창세기22장까지 계속해서 반복(22:15-18)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본장은 앞서 언급한대로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라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개인적인 사건(아내 사라의 장례를 위하여 무덤을 구하는 일)을 통해서 보여준 모습처럼, 이는 곧 세상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성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1.성도는 나그네 인생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라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해보면 먼저 아브라함의 아내, 이삭의 어머니로 압니다. 조금 더 말해보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두 번이나 팔려갈 뻔한 여인이고, 아브라함의 첩과 아들인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낸 여인 정도일 것입니다. 크게 비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여인인 사라가 127세에 헤브론 근방에서 죽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사라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굳이 언제 죽었는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족장시대를 다루고 있는 성경에서 여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도 드문 일인데, 여인의 수명을 언급하는 사람은 사라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성경에서 차지하는 사라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렇게 큰 믿음의 소유자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동역자인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하여 매장지를 얻을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살고 있는 헷 족속의 사람들에게 찾아가 매장지를 사고자 요청합니다.

창세기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그런데 아브라함이 헷 족속 사람들에게 요청할 때의 그의 고백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주민들 앞에서 자신을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로 밝힙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부동산을 살 선천적 권리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사라를 매장할 ‘소유지’를 파는 것은 그들의 재량에 달려 있음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힘이 없어서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 롯을 구할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창14장) 무려 4개국의 연합을 물리친 무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가진 능력도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그랄의 왕인 아비멜렉과 동등한 언약을 맺습니다.(창21:22-34) 그럼에도 아브라함이 헷 족속 사람들 앞에서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브라함은 하란 땅에서 떠나온 이주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돔성에 살았던 롯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대우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일에 나섰을 때, 봉변을 당할 뻔 한 일이 있었습니다.

창세기19: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이것이 현실입니다. 아무리 힘이 있고, 돈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굴러온 돌은 박힌 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처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히브리서11:13-14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이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알았듯이, 성도도 우리의 본향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가 이 땅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하늘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6:19-20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결국 이 땅에서 나그네의 인생입니다. 이렇게 애기하면 이 땅에서 함부로 살고, 마음대로 살아야지 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지언정 주님의 약속을 이어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헷족속의 사람들의 배려로 땅을 사지 않아도 되었음에도(창23:6 하반절) 땅을 샀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거 한다는 것은 본향을 찾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우리의 죽음조차도 약속에 대한 깊은 신뢰의 계기로 작용될 줄로 믿습니다.


2. 성도는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납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아브라함의 태도와(4절) 헷 족속의 추장이 아브라함에게 사용한 호칭(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사이에는 약간의 어긋남이 있습니다. 헷 족속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의 지도자’ 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상적인 ‘신’를 말합니다.

헷 사람들이 볼 때, 아브라함의 명성과 주변 왕들이 평화조약을 맺고, 대접하는 모습 등을 보고 평가할 때 아브라함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헷 족속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는 고백이 바로 이 고백인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되어 있지만, 원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세우신 군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헷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대우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을 이주자(4)로 설명하는데, 그들은 아브라함을 “지도자(6)”이라고 말하고, 아브라함은 “당신들 중에(4)”라고 한 말을 “우리들 가운데(6)”라고 바꿔 말합니다. 그만큼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자신들과 다름없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앞서 밝힌대로 본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는 모습으로 헷 족속을 찾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이유로 그들을 찾았고, 그들과 거래하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헷 족속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첫 약속이(12:2-3) 삶 가운데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1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약속의 축복이 드러나서 이제는 헷 족속의 사람들까지도 인정하는 지위까지 아브라함이 올라온 것입니다. 말뿐인 신앙, 말뿐인 축복, 말뿐인 증거가 아니라 드러나는 신앙, 역사하는 축복, 나타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현대어 성경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이 실현되기에 성도는 밝히지 않아도 드러납니다. 드러나기에 주변에서 가장 잘 압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바른 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을 가졌던 아브라함이기에 사라의 장지를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헷 족속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팔 생각이 없었습니다. 땅의 소유권을 넘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이 땅의 소유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이십니다. 그리고 이 섭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축복을 이루시기 위한 포석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도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 손길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주변인들로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신앙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삶보다 신앙이 우선시 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고, 신앙보다 삶이 우선시 되면, 앞에서는 함께 어울리지만 뒤에서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똑같다고 손가락질합니다. 이래도 불만, 저래도 불만입니다. 그래서 늘 고민입니다. 이러한 고민의 모습을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해결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드러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은 먼저가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의 삶을 사심으로, 우리의 뒤에서 역사하시는 은혜를 드러내시는 주님을 깨닫고, 주시는 삶 안에서 예배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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