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목사의 주일 설교 말씀

김영식 목사의 주일설교-신명기4:32~36(1편)

샤방샤론 2023. 4. 18. 23:55

들으라


신명기 4:32-36

(신 4:32)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신 4:33)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신 4: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신 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4:36) 여호와께서 너를 교훈하시려고 하늘에서부터 그 음성을 너로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그 큰 불을 네게 보이시고 너로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 말씀을 듣게 하셨느니라


1.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은 모세가 요단강 동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민족은 이스라엘 백성밖에는 없다. 라는 것입니다.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굉장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실상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이 단순합니다. 말씀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애굽에서의 경우과 같이 10가지 재앙,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 등 보여주시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핵심은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알려주십니다.(3번강조)

이와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거합니다. ①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3년6개월 동안 이어진 가뭄을 해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벨 여왕의 협박으로 믿음에 시험을 당합니다. 그래서 광야로 도망합니다. 광야의 어느 한 곳, 엘림나무에서 쉬고 있는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진과 불로 그의 앞을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 가운데 엘리야에게 다가오셨습니다.

②또 다른 증거가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시면서 마지막에 꼭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신약14회 : 복음서7회, 계시록7회)

 

③사도바울의 신앙의 고백도 이를 증거합니다. 사도바울이 주님의 환상과 계시를 통하여 삼층천을 다녀옵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낙원입니다. 분명히 자랑할 수 있는 간증이요,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인생의 마지막을 담은 로마서를 통하여 신앙을 정리합니다.

로마서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보는 것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간청해야 합니다.

모세오경은 출애굽 과정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각 성경마다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출애굽기와 신명기도 같은 사건을 다룹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는 있지만, 신명기에는 없는 사건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십계명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하여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산 정상으로 십계명을 받으러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산에 오르지 못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기다리는 데, 모세가 내려오지 않아 기다리는데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백성들은 결국에 금송이지를 만듭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에 대한 사람의 우상숭배로 답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심판과 죽음입니다. 이것이 출애굽기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명기는 하나님의 이름만 남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명기의 독특한 특징이며, 또한 성경전체의 핵심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증거합니다.

①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 것을 신기하겨 여겨 가까이 갔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곳에서 애기치 못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처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처음 만나 들었던 것도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기적과 이적은 하나님의 말씀 다음입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이렇게 행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당시 애굽과 열방에 퍼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②이스라엘의 최후의 사사이자 제사장이며,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을 세웠으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권을 만드는데 역할을 감당했던 사무엘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처럼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사무엘상 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③전무후무한 지혜와 이스라엘 역대 최고의 무력과 번영, 권력을 가진 솔로몬이었지만, 그의 시작도 한결같습니다.

[열왕기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드러나시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능력이요,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능력입니다. 그리고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과 약속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말씀을 듣을 수 있기를 간청하시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간청하시면 사무엘과 같이 솔로몬과 동일한 은혜가 임하게 될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셨다면 기도로 화답하시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두 인물을 살펴보면서 말씀을 정리하고자합니다.

①아람과 이스라엘 전쟁 중에 시시때때로 아람의 작전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원인을 찾게되는데 그 원인이 엘리사였습니다. 그래서 아람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엘리사가 있는 도단으로 군대를 파견합니다. 어느날 아침에 엘리사의 사관이 아람이 군대를 보고 질겁합니다. 그리고는 엘리사를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립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천하태평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관을 위로합니다. 아무리 상황을 좋게 보려고 해도 절망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진정을 하라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진정하지 못하는 사관에게 엘리사가 기도함으로 그의 눈을 열러 보게 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엘리사가 자신에게 한 말을 깨닫습니다.

열왕기하6: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②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도마는 제자들의 고백을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손에 난 못 자국과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아야 믿겠다고,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던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말대로 증거롤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24: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고 믿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듣고 깨닫지 못하면 보아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믿는 것보다 더 큰 믿음은 들음으로써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기에 열심을 다하셔서, 그분의 은혜가 각자의 삶 가운데 다양하게 나타나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